[기고]계약과 이행에 따른 결과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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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1.21 11:12   수정 : 2017.11.21 11:12
더위가 시작되는 6월 초, 관세청 외환관리팀에서 회사를 찾아왔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땀을 흘리며 찾아온 그들은 내게 선적 서류(선하증권, 송장과 송금내역서)등을 보여주고 우리 거래처 중 한 회사가 외환도피 협의를 받고 있으니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달라고 했다.

그 업체가 중국에서 수입을 한다고 해외송금을 했지만 물건이 들어온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 관세청은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모든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은행, 국세청과 관세청 등이 각 기업의 거래 내역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간, 그 해 봄, 영등포에 있는 선배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운영한 회사인데 사무실엔 책장도 없고 서류가 거의 없었다. 선배는 회사에 있던 서류 때문에 조사기관에 꼬투리가 잡혀 세금 추징을 당했다며 옛 경험에서 비롯된 삶의 지혜로 사무실에 자료를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금 상황과 비교해보니, 그 선배의 경우도, 조사기관에서 자료를 이미 확보하고 찾아가 사무실 서류와 대조를 하려 했던 것인데 정황을 잘 못 판단했던 듯하다.

그 이후로 수출입하려는 신생업체와 수입운송에 관해 상담할 때는, 외환거래, 세무자료와 수입 내역을 사실에 근거하여 꼼꼼히 기록하고 거래 자료를 잘 보관하여 유사시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증거로 제출해야한다고 당부하는 습관이 생겼다.

적은 직원으로 사업을 키우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매출 자료를 누락시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국내 자료는 시간이 지나서 보완할 수 있지만,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할 때, 외환 거래 내역은 더욱 철저히 관리해야한다. 작은 금액이라고 하찮게 여겨 누락이 반복되면 금액이 커지면 실사가 나올 경우 소명하지 못하면, 외국환관리법 위반으로 많은 벌금과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중국에서 생산해서 미국으로 수출하려는데 한국원산지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전화가 왔다. 1990년대 우리나라 많은 봉제공장들이 중국진출을 했고 값싼 인건비를 활용한 사업은 급성장했다. 중국 근로자들이 부지런히 재봉틀을 돌렸고 제품이 잘 나왔다. 품질이 한국산과 비슷한 수준이 되자, 일부 사업주들은 욕심이 생겼다.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한국에 들여와 아무런 가공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해외로 재수출 하는 것을 검토하고 실행했었다.

중국 생산이 늘고 불법 판매가 극성을 부리자 한국에서 생산 판매하는 토종 공장들이 갈수록 경쟁력을 잃고 해당 산업은 쇄락의 늪에 빠졌다.

자국 산업 피해가 늘어나자 수입 국가들은 원산지 관리를 철저히 하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나라 공장이 중국으로 빠져나가 한국에 남아있는 생산시설이 거의 없는데도 한국제품 수입량이 줄지 않자 원산지 증명서 상에 표기된 한국 수출업체의 공장을 급습하였고, 껍데기뿐인 공장을 확인하곤 그들이 속여 판매한 제품들을 압류하였다.

수입업체에게 막대한 벌금과 추징금을 부과하여 도산하자 해외 판매망마저 붕괴되었다. 생산자는 판매자금을 못 받게 되었고, 원산지 강화로 매출이 줄었지만 근로자를 줄이거나 공장폐업을 쉽게 할 수 없었던 중국에서 사업주들은 합법적인 사업철수 대신에 야반도주를 택했다. 그들의 계획성 없는 도피로 무상 기술이전과 생산시설들이 기술을 이미 습득한 중국 근로자들에 헐값에 넘어가고 해외시장마저 빼앗기는 처절한 패배가 이어졌다.

2016년 말 갑작스럽게 큰 물류업체가 파산절차를 밟으며, 우리나라 무역업체들은 수출입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막대한 돈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그 공백을 메워줄 구원투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해상운임이 많이 올랐고 제 때 선적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고 그 회사가 정상화 되었을까 하는 물음엔 회의적이다.

아마도 투자한 자금보다 더 많은 자금을 다시 투자해야하는지를 놓고 똑같은 갈등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적 선사들이 M&A를 통해 몸집을 불리고 있을 때, 유독 우리 국적선사들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있었다. 그래서 선박에 화물을 채우지도 못했고, 치킨게임으로 해마다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었다.  무역규모가 1조 달러에 이르는 데도 국적선사 하나를 제대로 키울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실마리를 보았다. 오늘도 새로운 것을 찾는, 소비자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상인들이 해외로 나가 수입을 위해 경쟁을 하고 있다. 그들은 사려는 제품만 관심을 가질 뿐 지급한 돈이 갖는 국제매매계약조건(Incoterms, 무역조건의 해석에 관한 국제규칙) 상 권리와 의무는 도외시한다.

물건을 사면서 수입 독점권을 위해 웃돈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독점권을 빼앗길까봐 파는 사람의 눈치를 먼저 살핀다. 경쟁상대가 없으면 국내 판매가격을 높여 충분한 이익을 보기 때문에 수출업체에게 구매자의 권리주장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량(LCL)을 수입하는 경우 운송권리가 없는 가격(CFR 운임포함,CIF 운임보험료포함)으로 계약이 체결된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수입 보세 창고료를 높이는 결과로 나타났다. 

운송업체가 쉽게 화물을 유치하기 위해 수출업체에게 운임을 받지 않고, 수입업체에게 높은 창고료를 부과해 손실을 보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사화 된지 10년이 지났고, 새로운 가격 조건(Incoterms 2010, 10년 주기로 개편되며 이전 조건과 개편된 조건만을 사용하기로 함)이 만들어진지 7년이 지났지만 실무에 적용하려는 사람이 적다. 

아직도 현장에서는 고서에 있는 Incoterms 1980을 읊조리고, Incoterms 2010을 쓰는 선진국과 가격조건을 다르게 해석하고 계약하며 불필요한 비용을 내고 있다. 물건만 내게 오면 된다는 식이다.

이제 막 세계화에 눈을 뜬 아시아와의 국제거래 가격은 무의미하다. 수출업체가 운임을 지급하기로 계약하고 선적할 때 운임을 지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리베리트를 주는 선사에게 물건을 넘겨 수입업체에게 자기가 응당 지불해야 할 비용을 떠넘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다. 원가 절감을 원하는 회사의 욕구를 채워주면서 주머니에 동전이 쌓이니 관계를 깨고 싶은 생각도 없다.

먹이사슬이 기형화된 것을 알지만 누구도 이를 정상화 하려고 하지 않는다. 리베이트에 길들여진 수출업체가 가격조건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제품이 귀하고 독점적이라면 더욱 그렇다. 수입업체도 순응하면서 선사 선택권은 더러운 손에 맡겨지고 물류인은 눈을 감았다.

판매자의 입장에서 보면, 수출업체 운영진은 지금 거래하는 수입업체를 놓치고 싶지 않은 점이 있다. 새로운 업체가 찾아온다고 계속 업체를 바꿔가며 판매를 지속할 수 상품도 그리 많지 않다. 수입업체와 계약을 끝내면 새로운 수입업체를 찾기 위한 영업비용이 늘어나고, 재고 부담을 가져야하고 판매가 불규칙하면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가격 조정을 할 때는 수출업체 운영진과 머리를 맞대고 직접해야한다.

그리고 정보 속에 사는 국내의 영리한 깨어있는 소비자들을 높은 가격으로 현혹시킬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중국에서 아이폰8을 사기위해 더 이상 줄을 서지 않는 것은 좋은 예이다. 이제 소비자와의 눈높이를 잘 맞춰야 한다.

국제무역에서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마음의 촛불을 켤 때다. 포기한 물류계약 주권도 찾아 왜곡된 물류시장을 내가 바로 잡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량화물(LCL)인 경우 모든 계약을 Incoterms 2010의 FCA(운송인 인도조건)로 바꿔야 한다.

만약 수출업체가 2020년(Incoterms2010과 Incoterms 2020만 유효) 이후 콘테이너 화물운송에서 폐기될 것으로 보이는 조건 (FOB, CFR, CIF)의 가격과 FCA at Carrier‘s CFS(운송인 창고에서의 운송인 인도조건) 가격을 똑같이 준다(원래는 FCA가격이 더 싸야한다)면 그 가격은 수용해도 된다.

수출업체가 리베리트 받는 것을 포기하고 양보한 가격조건이기 때문이다. 이후 물류비용을 합리적으로 제시하는 운송인을 내가 선임해 운송하면 총수입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수출업체가 FCA at 수출업체(수출업체에서의 운송인 인도조건)로 가격을 바꾸려한다면 가격인하를 강력히 주장해야한다.

수입업체를 기만하는 정도가 지나친 것으로 그들은 언제든 거래처를 바꿀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장기적으로 수입할 거래처를 바꿀 준비를 해야 한다.

수입업체가 수입가격조건을 바꿀 때만이 물류질서가 바로잡히고 내 시장을 지킬 수 있다.  후배에게 올바른 토양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한다.

작은 촛불에 생명을 불어넣자.

이길환 박사(탑지티씨 대표이사/산업경영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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