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동보항공-이인제 부회장

  • parcel
  • 입력 : 2013.07.09 10:30   수정 : 2013.07.09 10:30
초등학교 입학

또 하나의 겨울이 지나고, 1952년의 봄. 흥남부두에서 월남한지 1년 4개월 만에, 나는 드디어 국민학교 학생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고맙게도 나를 국민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평소 할아버지는 농사꾼은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셨으나, 이 무렵 산너머 율포에 살던 사촌 홍재형이 우리 집에 와서, 동부국민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입학시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월초의 입학을 며칠 앞두고, 나는 삼촌으로부터 한글을 배웠다. 누가 만든 글인지 몰라도 배우기 쉽고 재미있다.

내가 한글을 빨리 터득하자, 사촌형은 자기 책을 가져와 읽어보란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어내려 갔다. 입학하기 전에 이미 읽기는 어느 정도 숙달되었다.

무엇보다 신나는 것은 아버지가 검정 고무신을 사주신 것이었다. 이제껏 신던 짚신은 발이 시리고, 잘 벗겨져 불편했는데, 고무신은 신고 벗기도 편할뿐더러, 잘 벗겨지지도 않고 뭣보다 “폼나는”것 아닌가?

이제껏 홍재형, 용식이형이나, 금자 누나가 책보끼고 학교가는 걸 부럽게 바라만 봐 왔는데, 이제 나도 고무신 신고 학교에 간다 생각하니, 가슴 뿌듯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세상을 반쯤 얻어 뛰어 오를듯한 기분이었으나, 학생답게 의젓해야지하는 생각으로 기쁜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고무신을 집어 머리맡에 놓고 잠들었다.

동부면 산양리의 동부초등학교 1학년 2반. 학교에서는 원주민과 피난민들을 따로 반편성하여, 우리들은 모두 2반이 되었다. 이는 우릴 차별하기보다, 학생 관리가 수월하고, 내일이라도 휴전회담이 진전되어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이북으로 돌아갈 것을 대비한 조치가 아니었던가 싶다.

우리 담임은 20대 초반의 아릿다운 처녀 백 금복 선생님.

우리는 교실부족으로 본관 앞 강당을 배정받았는데, 책상과 걸상은 없이 맨바닥에서 쪼그리고 앉아 공부해야 했는데, 그나마도 원주민 학생들의 수업이 끝난 다음에라야 수업을 할 수 있어, 언제나 오후반이었다.

그러나, 난생 처음으로 국어, 셈본, 사회생활, 자연의 교과서 네 권을 받아든 우리는 신기하고 우쭐한 마음에 마치 어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 코리아포워더타임즈 & parcelherald.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보기
  • 주식회사 제이에스인터네셔널코리아
    동종업종 10년이상 / 초대졸이상
    01/31(금) 마감
  • 현대코퍼레이션그룹계열사 경력직 채용(구, 현대종합상사)
    4년 이상 / 대졸 이상
    01/31(금)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