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동보항공-이인재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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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2.05 16:42   수정 : 2013.02.05 16:42
나와 6.25(29)

새로운 행복의 시작

동부면으로 이사 온 우리 식구들은 모두 행복했다.

뭣보다 우린 이제 "우리 집" 에서살게 된 까닭이다.  할아버지가 그새 여러 차례 오가며 마련한 우리의 보금자리.

비록 흙벽에 지붕은 초가이고 단간방이었으나, 장목면에서 살던 농기구 창고와는 천양지차였다.

방이 넓어 아랫목의 할머니로부터 제일 윗목의 삼촌까지 아홉 식구가 동시에 발을 뻗을수 있어, 교대로 새우잠 잘 필요도 없었고, 아버지가 일부러 나다닐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부엌이 집안에 있어, 할머니와 엄마랑 바깥에서 추위에 떨 일도 없었다.
화장실만은 여전히 밖에 있어 겁많은 내가 밤에 다니기 불편했지만, 그대신 요강을 방안에 들여 놓아 한결 수월해졌다.

더욱 좋은 것은 한꺼번에 많은 동무들이 생긴 것이었다.

시길이와 시삼이 형제, 순겸이는 동갑내기들이었고, 춘집이와 춘근, 배천이는 몇살위의 형들, 중혁이와 배두는 동생뻘, 그외에 명숙이, 명자, 금자, 납죽이 등의 여친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가 한 고향에서 피난 나온 이들이었다.

실인즉, 우리는 동부면 산양리의 황무지에 널다란 피난민촌을 짓고 모여 사는 것이었다.

장목면에 살때는 바닷가이긴 하였지만 산세가 험하여 언제나 갇혀 사는 기분이었는데, 여기는 분지가 넓고 집앞 방천 너머로 큰 내가 흘러, 탁 트인 자연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었다.

집뒤의 우물은 마을 공동 우물이라, 우리 집은 하루 종일 시끄러웠는데, 지난 반년동안 벙어리처럼 살아온 내겐 이것 또한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식사만은 아직도 아침 잡곡밥, 저녁 죽으로 두끼였지만, 이미 체질화되어 있었고, 가끔씩 물가에서 붕어나 미꾸라지를 잡아 간식도 할 수 있어, 별반 부러울게 없는 신나는 생활이었다.

전쟁이 발발한지 어언 일년.

이제, 이 전쟁에서 어느편도 일방적인 승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미군의 화력이 막강하였으나, 인해전술로 북한땅을 도배하고 있는 중공군을 쓸어내고 북한을 점령하는 것은 물건너 간 일이고, 인민군과 중공군이 다시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오는 것 또한 불가능이었다.

그리하여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회담은 싸우며 진행되는 회담이었기 때문에, 양편 모두 유리한 입지 확보를 위하여 전투는 더욱 치열하였으며, 자그만 땅이라도 더 뺏기 위하여 피는 한정 없이 흘려야 했다.

불행중 다행이랄까, 인민군이나 중공군은 해,공군력이 절대적으로 약해, 후방 교란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남쪽 섬에 있는 우리는 일견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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