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6.25(27)
슬픔보단 생존
영숙이의 죽음이 우리 가족에게 큰 슬픔이었으나, 언제까지나 슬픔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에겐 그 죽음의 인과관계를 따지고, 그에 따른 대응을 할만한 힘도 여유도 없었다. 당장 하루하루의 생존이 다급하였기 때문에, 네살배기 어린 아이의 죽음은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린 다시 단조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
새끼 꼬고, 가마니 짜고, 나무해 오고, 바닷가에 가서 먹을 것을 채집해 오고…
나에게 제일 힘든 것은 나무하기였고, 제일 즐거운 것은 바다행이었다.
나무하기 자체는 별로 힘들지 않았으나, 나뭇짐을 지고 오는 것이 힘들었다. 삼촌과 사촌형은 산에서 자그만 나뭇단을 내게 지워주곤 먼저 집으로 보내곤 했는데, 처음엔 가볍던 나뭇짐이 시간이 감에 따라 무거워지면서 가슴이 찢어질듯한데, 중간에 쉬고 싶어도 다시 일어날 수 없어 그냥지고 오는게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바다행은 즐거웠다.
바닷가에서는 무거운 걸 들 일도 없고,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게를 잡고 조개를 줍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게는 빨라 잡기가 쉽지 않았으나, 어쩌다 잡으면 바닷물에 헹구어 아작아작 씹어 먹는게 별미였고, 조개는 잡기가 아주 쉬웠다.
북한에 없는 해삼을 처음 봤을 땐 기겁을 했으나, 이게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집중적으로 해삼 채취에 나섰는데, 그 당시 바다에는 해삼이 많아 허기를 채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대부분 침묵 속에서 이루어졌다.
어른들끼린 일하며 서로 대화도 간간히 있었으나, 작업상 필요한 말일뿐이었다. 신문이나 라디오도 없었고, 고단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농담이나 잡담조차 나눌 여유가 없었으며, 더구나 말동무가 없던 나는 하루 종일 거의 벙어리같이 보내는 게 일과였다.
새끼를 꼬다가 방파제 너머의 바다를 바라보곤, “바닷물이 들어왔다.”, “바닷물이 나갔다.”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슬픔보단 생존
영숙이의 죽음이 우리 가족에게 큰 슬픔이었으나, 언제까지나 슬픔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에겐 그 죽음의 인과관계를 따지고, 그에 따른 대응을 할만한 힘도 여유도 없었다. 당장 하루하루의 생존이 다급하였기 때문에, 네살배기 어린 아이의 죽음은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린 다시 단조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
새끼 꼬고, 가마니 짜고, 나무해 오고, 바닷가에 가서 먹을 것을 채집해 오고…
나에게 제일 힘든 것은 나무하기였고, 제일 즐거운 것은 바다행이었다.
나무하기 자체는 별로 힘들지 않았으나, 나뭇짐을 지고 오는 것이 힘들었다. 삼촌과 사촌형은 산에서 자그만 나뭇단을 내게 지워주곤 먼저 집으로 보내곤 했는데, 처음엔 가볍던 나뭇짐이 시간이 감에 따라 무거워지면서 가슴이 찢어질듯한데, 중간에 쉬고 싶어도 다시 일어날 수 없어 그냥지고 오는게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바다행은 즐거웠다.
바닷가에서는 무거운 걸 들 일도 없고,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게를 잡고 조개를 줍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게는 빨라 잡기가 쉽지 않았으나, 어쩌다 잡으면 바닷물에 헹구어 아작아작 씹어 먹는게 별미였고, 조개는 잡기가 아주 쉬웠다.
북한에 없는 해삼을 처음 봤을 땐 기겁을 했으나, 이게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집중적으로 해삼 채취에 나섰는데, 그 당시 바다에는 해삼이 많아 허기를 채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대부분 침묵 속에서 이루어졌다.
어른들끼린 일하며 서로 대화도 간간히 있었으나, 작업상 필요한 말일뿐이었다. 신문이나 라디오도 없었고, 고단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농담이나 잡담조차 나눌 여유가 없었으며, 더구나 말동무가 없던 나는 하루 종일 거의 벙어리같이 보내는 게 일과였다.
새끼를 꼬다가 방파제 너머의 바다를 바라보곤, “바닷물이 들어왔다.”, “바닷물이 나갔다.”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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