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al Article - 지난 날을 돌아보며 …
건강을 지켜라!
[지난 호에 이어]
마사지하던 아줌마는 자기가 하는 방법으로는 더 이상 차도가 없자 자기의 교수님을 한번 찾아가자고 했다. 그분은 병원에서 정년퇴직 후 집에 계셨는데 찾아가보니 70살은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였다. 나를 이리저리 보고 배를 만져보더니만 자기 소견으론 맹장염인 것 같다고, 소견서를 써줄 테니 자기 후배들이 있는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라고 한다.
맹장이라니! 나도 그 정도의 증상은 알고 있는데,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다. 그분에게 소정의 치료비를 지불하고 빨리 집으로 와버렸다. 그리고 그곳을 소개해준 분에게는 아무래도 바로 서울로 가야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소견서는 당연히 없애버렸다.
아마도 그 소견서를 들고 할아버지 후배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면 지금쯤 실험 대상의 몸이 되어 의학도들에게 이리저리 찔림을 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3일간을 더 앓고 나서야 겨우 거동할 수 있게 되어 하얗게 된 얼굴로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떠나온 지 10일 만에 다시 돌아갔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있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부탁했는데, 병원에서도 병명을 잘 모른다고 했다.
몸살이 오래 걸린 것인지…그저 몸에 면역력이 줄었다는 말만 들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특히 해외 출장을 자제하라고 하는데 내 업무상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에서 20일 정도 업무를 보고 쉬면서 체력을 보충한 후 다시 타쉬켄트로 돌아가는 강행군을 했다.
그 후로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서 아침에 수영을 시작했다. 새벽 7시에 도착하면 허름한 호텔 내 실내 수영장엔 나와 주재원, 그리고 기사 한 명과 코치 한 사람만 있었다. 그 넓은 수영장에 네 명 밖에 없거나 가끔 두세 명 정도가 더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되니 수영도 다 배웠고 몸도 좋아져서 다시 예전처럼 보드카를 새벽까지 마셔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생겼다.
수영은 모스크바에 있을 때마다 틈만 나면 했다. 호텔 내에 있는 수영장은 저녁과 주말에는 개인이 전체를 임대하여 그 곳에서 가족이나 연인들이 모여 파티도 열고 밤새 지내곤 하는데, 새벽에 수영을 하다 보면 전날 임대를 했던 연인들이 술이 덜 깬 건지, 부끄러움이 없어서인지 전라로 수영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게 됐다. 그럴 때는 나와 직원 모두 눈이 그쪽으로 쏠리다 보니 정신 못 차리고 수영하다가 발이 엉켜서 물을 마시곤 했다.
난 아직도 항상 체력유지를 중요시한다. 몸이 게을러져서 가끔 운동을 소홀히 할 때가 있지만 체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반드시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아침 한시간은 꼭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건강한 육체가 건강한 정신을, 건강한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한여름밤의 꿈
경복궁 앞, 우린 좌석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부하세요. 젊은 사람이…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 말 한 마디를 하고 마지막 악수를 한 뒤 그녀는 버스에 올라탔다. 경복궁 앞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공연 포스터가 너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식구들은 내가 자는 모습을 별로 못봤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업 실패로 힘들어진 가정 형편 때문에 제대를 하면서부터 나는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제대한 다음날 곧바로 큰 형 양복과 아버지 구두를 신고 모교인 서린상고를 찾아갔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였다.
제대 후라 구직에는 개인적으로 문제가 없었고 그날 취업실에 온 선후배들보다 약간 성적이 좋았던 나는 당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직원이 급했는지 인상이 좋아서인지 난 면접 후 곧 취직이 되어 미국계 회사의 한국 지점에서 매출과 회계 분야를 맡았다. 신입사원 시절 나의 주업무는 수금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건강을 지켜라!
[지난 호에 이어]
마사지하던 아줌마는 자기가 하는 방법으로는 더 이상 차도가 없자 자기의 교수님을 한번 찾아가자고 했다. 그분은 병원에서 정년퇴직 후 집에 계셨는데 찾아가보니 70살은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였다. 나를 이리저리 보고 배를 만져보더니만 자기 소견으론 맹장염인 것 같다고, 소견서를 써줄 테니 자기 후배들이 있는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라고 한다.
맹장이라니! 나도 그 정도의 증상은 알고 있는데,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다. 그분에게 소정의 치료비를 지불하고 빨리 집으로 와버렸다. 그리고 그곳을 소개해준 분에게는 아무래도 바로 서울로 가야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소견서는 당연히 없애버렸다.
아마도 그 소견서를 들고 할아버지 후배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면 지금쯤 실험 대상의 몸이 되어 의학도들에게 이리저리 찔림을 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3일간을 더 앓고 나서야 겨우 거동할 수 있게 되어 하얗게 된 얼굴로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떠나온 지 10일 만에 다시 돌아갔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있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부탁했는데, 병원에서도 병명을 잘 모른다고 했다.
몸살이 오래 걸린 것인지…그저 몸에 면역력이 줄었다는 말만 들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특히 해외 출장을 자제하라고 하는데 내 업무상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에서 20일 정도 업무를 보고 쉬면서 체력을 보충한 후 다시 타쉬켄트로 돌아가는 강행군을 했다.
그 후로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서 아침에 수영을 시작했다. 새벽 7시에 도착하면 허름한 호텔 내 실내 수영장엔 나와 주재원, 그리고 기사 한 명과 코치 한 사람만 있었다. 그 넓은 수영장에 네 명 밖에 없거나 가끔 두세 명 정도가 더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되니 수영도 다 배웠고 몸도 좋아져서 다시 예전처럼 보드카를 새벽까지 마셔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생겼다.
수영은 모스크바에 있을 때마다 틈만 나면 했다. 호텔 내에 있는 수영장은 저녁과 주말에는 개인이 전체를 임대하여 그 곳에서 가족이나 연인들이 모여 파티도 열고 밤새 지내곤 하는데, 새벽에 수영을 하다 보면 전날 임대를 했던 연인들이 술이 덜 깬 건지, 부끄러움이 없어서인지 전라로 수영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게 됐다. 그럴 때는 나와 직원 모두 눈이 그쪽으로 쏠리다 보니 정신 못 차리고 수영하다가 발이 엉켜서 물을 마시곤 했다.
난 아직도 항상 체력유지를 중요시한다. 몸이 게을러져서 가끔 운동을 소홀히 할 때가 있지만 체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반드시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아침 한시간은 꼭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건강한 육체가 건강한 정신을, 건강한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한여름밤의 꿈
경복궁 앞, 우린 좌석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부하세요. 젊은 사람이…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 말 한 마디를 하고 마지막 악수를 한 뒤 그녀는 버스에 올라탔다. 경복궁 앞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공연 포스터가 너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식구들은 내가 자는 모습을 별로 못봤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업 실패로 힘들어진 가정 형편 때문에 제대를 하면서부터 나는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제대한 다음날 곧바로 큰 형 양복과 아버지 구두를 신고 모교인 서린상고를 찾아갔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였다.
제대 후라 구직에는 개인적으로 문제가 없었고 그날 취업실에 온 선후배들보다 약간 성적이 좋았던 나는 당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직원이 급했는지 인상이 좋아서인지 난 면접 후 곧 취직이 되어 미국계 회사의 한국 지점에서 매출과 회계 분야를 맡았다. 신입사원 시절 나의 주업무는 수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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