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위협
[지난 호에 이어]
우즈베키스탄은 90년도에도 독립을 하기 전까지 약 100년 정도를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나라이다. 그렇다보니 국가적으로도 모든 업무가 러시아에서 습득한 기술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법령을 새로 바꿀 때도 사회주의 국가로서 선진국인 러시아가 모델이 되었다.
처음 모스크바에서 일을 배울 때부터 나는 관세실무라는 나름대로의 책자를 만들어서 일을 했다. 통관을 처음 하는 아이템과 방법에 대해 새로운 게 있을 때마다 문서로 작성하여 커다란 파일을 만들었고 그날그날 만났던 세관원의 성격과 해당 제품의 아이템을 바라보는 세관원의 생각과 판간까지 자세하게 기입하는 장부도 따로 작성했다. 이런 수고가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어주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그 방식대로 해서 일사천리로 빠른 시간에 바이어를 확보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되었다. 경쟁업체에서 당연히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고, 가격도 덤핑을 치기 시작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갔고 경쟁사의 통관 브로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전통 우크베키스탄 민족으로 틀시 한국 식당과 술집을 가면 항상 나와 우리 회사에 관한 말을 했고 반드시 여기서 죽이겠다고 떠들고 다녔다.
우즈베키스탄은 실크로드에 해당하응 지역이다. 이곳에는 우리 동포(고려인)가 스탈린 시대에 강제 이주 당해 오기 전까지 생산품이 별로 없었다.
자연환경이 척박하고 여름엔 50도까지 올라가는 지역이니 이들이 먹고 살수있는 방법은 옛날부터 산적질 뿐이었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의 민족을 일컬어 한 손으로 악수하고 다른 한 손은 뒤에 칼을 감추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한국 기업이 이 나라에 투자를 했다가 처음과 너무나 다른 우즈베키스탄 정보에 실망하여 대부분 철수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 기업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맥도날드가 안 들어간 아주 희귀한 나라 중 한 나라일 것이며, 가망성이 좀 없어 보이는 나라이다. 그런 민족의 사람이 계속 날 죽이겠다고 떠들고 다니니 걱정이 되었다.
사무실이 너느 정도 운영이 되면서부터는 모스크바 주재원 한 명이 합류해서 나와 같이 생활하게 되었는데 안전 면에서는 나 혼자일 때보다 더 부담스러웠다. 사실 그동안 러시아에 있으면서 워낙 사람 죽은 것을 많이 보아서 그냥 있을 수 가 없었다.
이곳은 경찰국가로 불릴 만큼 경찰이 워낙 많아서 치안이 다른 주변국가에 비해 훨씬 안정되어 있는 나라이지만, 사람 일을 누가 알겠는가… 협력업체에서는 경찰에 부탁해서 집 앞에 보초를 세우게 해주겠다고 하기도 하고, 우리 현지 직원들은 설마 그놈들이 실제로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느냐고도 하고…
당시 내 집은 이곳에서 말하는 땅집(단독주택)이어서 더 불안했다. 결국 집을 이사했다. 경쟁업체 통관 브로커가 잠잠해 질 때가지 임시로 호텔로 거처를 옮기고 거기서 두 달을 살게 되었다. 비싼 호텔에 묵고 있자니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뭘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도 그런 녀석 하나 때문에 이런 곳에서 움츠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바로 다음날로 나를 죽이겠다고 떠드는 그 우즈베키스탄 통관사를 찾아갔다. 그와 담판을 짓기 위해 나머지 사람을 내보내고 둘이서 협상을 했다.
“나한테 뭘 원하는 거냐?”
“여기서 떠나라! 나 혼자 충분히 잘 하고 있는 지역이다.”
“우리는 우리 회사 방식대로 영업하는 것이고 너희에게 문제가 있어서 바이어가 우리에게 온다면 그건 너희 잘못이다. 그리고 우린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뿐이다.”
사실 이 통관사와 나는 초면이 아니었다. 처음 타쉬켄트에 오자마자 그를 찾아가 우리도 너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예의 있게 다가갔으나 그 자리에서 나를 망신만 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지난 호에 이어]
우즈베키스탄은 90년도에도 독립을 하기 전까지 약 100년 정도를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나라이다. 그렇다보니 국가적으로도 모든 업무가 러시아에서 습득한 기술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법령을 새로 바꿀 때도 사회주의 국가로서 선진국인 러시아가 모델이 되었다.
처음 모스크바에서 일을 배울 때부터 나는 관세실무라는 나름대로의 책자를 만들어서 일을 했다. 통관을 처음 하는 아이템과 방법에 대해 새로운 게 있을 때마다 문서로 작성하여 커다란 파일을 만들었고 그날그날 만났던 세관원의 성격과 해당 제품의 아이템을 바라보는 세관원의 생각과 판간까지 자세하게 기입하는 장부도 따로 작성했다. 이런 수고가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어주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그 방식대로 해서 일사천리로 빠른 시간에 바이어를 확보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되었다. 경쟁업체에서 당연히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고, 가격도 덤핑을 치기 시작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갔고 경쟁사의 통관 브로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전통 우크베키스탄 민족으로 틀시 한국 식당과 술집을 가면 항상 나와 우리 회사에 관한 말을 했고 반드시 여기서 죽이겠다고 떠들고 다녔다.
우즈베키스탄은 실크로드에 해당하응 지역이다. 이곳에는 우리 동포(고려인)가 스탈린 시대에 강제 이주 당해 오기 전까지 생산품이 별로 없었다.
자연환경이 척박하고 여름엔 50도까지 올라가는 지역이니 이들이 먹고 살수있는 방법은 옛날부터 산적질 뿐이었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의 민족을 일컬어 한 손으로 악수하고 다른 한 손은 뒤에 칼을 감추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한국 기업이 이 나라에 투자를 했다가 처음과 너무나 다른 우즈베키스탄 정보에 실망하여 대부분 철수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 기업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맥도날드가 안 들어간 아주 희귀한 나라 중 한 나라일 것이며, 가망성이 좀 없어 보이는 나라이다. 그런 민족의 사람이 계속 날 죽이겠다고 떠들고 다니니 걱정이 되었다.
사무실이 너느 정도 운영이 되면서부터는 모스크바 주재원 한 명이 합류해서 나와 같이 생활하게 되었는데 안전 면에서는 나 혼자일 때보다 더 부담스러웠다. 사실 그동안 러시아에 있으면서 워낙 사람 죽은 것을 많이 보아서 그냥 있을 수 가 없었다.
이곳은 경찰국가로 불릴 만큼 경찰이 워낙 많아서 치안이 다른 주변국가에 비해 훨씬 안정되어 있는 나라이지만, 사람 일을 누가 알겠는가… 협력업체에서는 경찰에 부탁해서 집 앞에 보초를 세우게 해주겠다고 하기도 하고, 우리 현지 직원들은 설마 그놈들이 실제로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느냐고도 하고…
당시 내 집은 이곳에서 말하는 땅집(단독주택)이어서 더 불안했다. 결국 집을 이사했다. 경쟁업체 통관 브로커가 잠잠해 질 때가지 임시로 호텔로 거처를 옮기고 거기서 두 달을 살게 되었다. 비싼 호텔에 묵고 있자니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뭘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도 그런 녀석 하나 때문에 이런 곳에서 움츠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바로 다음날로 나를 죽이겠다고 떠드는 그 우즈베키스탄 통관사를 찾아갔다. 그와 담판을 짓기 위해 나머지 사람을 내보내고 둘이서 협상을 했다.
“나한테 뭘 원하는 거냐?”
“여기서 떠나라! 나 혼자 충분히 잘 하고 있는 지역이다.”
“우리는 우리 회사 방식대로 영업하는 것이고 너희에게 문제가 있어서 바이어가 우리에게 온다면 그건 너희 잘못이다. 그리고 우린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뿐이다.”
사실 이 통관사와 나는 초면이 아니었다. 처음 타쉬켄트에 오자마자 그를 찾아가 우리도 너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예의 있게 다가갔으나 그 자리에서 나를 망신만 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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