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선풍경, 낮선문화 / 러시아 문화 이해하기
우리는 가족
[지난 호에 이어]
사실 그 말이 맞지만 한국의 회사에서 사장 결재에 이런 주장을 강력히 제기할 만한 경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경리 책임자인 따마라와는 1년간을 잘 지냈다. 성격 자체도 내성 적이고 차분해서 경리에 적격이었다. 그런데 업무적인 관계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대표이사를 외국인으로 하면 너무나 많은 제약 조건이 붙어 다녔고 경찰과 세관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현지인에게 사장 명의를 만들어주는 게 사업하기 편했다.
그런데 회의 때 그 현지인 사장인 엠마와 경리인 따마라가 실제 사장인 나의 의견에 반대 입장을 표현했다. 원리원칙만 따지고 마치 교과서를 보고 일을 하는 것처럼 ‘교본에 이렇게 나와 있으니 이렇게만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따마라가 문제가 아니라 발상의 차이였는데 더 쉽게 말하자면 사외주의 국가체제에서 배운 사고방식과 자본주의적 사고의 차이라고밖엔 볼 수 없었다.
정말 답답했다.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 난 회사문을 닫아버리겠다며 화를 내고 말았다.
“어떻게 사장에게 이렇게 따지고 화를 낼 수가 있어?”
“여기는 러시아다. 러시아에서는 사장이 경리에게 그렇게 화를 내지도 않고 경리의 의견이 안 들어간 것은 무효다.”
이런 감정적인 의견이 왔다갔다하다가 따마라도 일 안 하겠다며 나가버렸다. 나는 집에 가서 보드카를 마시면서 ‘내일 타일러서 일을 시켜야지. 아쉬운 게 나인데 좀 참아보자’하고 생각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날 출근을 해서 따마라를 기다렸으나 그녀는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엠마와 상의하면서 “경리를 다시 뽑아서 일을 시작합시다. 어제 나도 실언을 좀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을 시작하는데 엠마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따마라였다. 어젯밤에 남편이 자살을 해서 출근을 못 한다고 정말 미안하지만 장례식 때까지 기다려주면 그 이후로는 출근하겠다고 했다.
혹시 나 때문에 불편한 마음으로 집에 가서 남편과 싸워 그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엠마와 함께 따마라의 집을 찾아갔다.
집에서 본 따마라는 어제의 그 표독한 눈빛은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어린 양과 같은 눈빛으로 우리를 맞이하면서 어린 두 아들과 인사를 했다. 몇 년 전 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그 이후로 계속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남편이 어제 저녁에 14층 베란다에서 떨어져 자살을 했다고 했다.
나도 지금은 딸 둘이 있는 가장이고 양가 부모님과 친인척이 정말 많다. 가정이 편안해야 바깥일도 잘 된다는 걸 안다. 가족 주변에서 이러저러한 문제가 발생하면 신경이 쓰려서 일에 잘 집중할 수가 없다. 지금은 이런 마음을 알겠는데 그 당시 총각이었던 나는 그걸 잘 이해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직원들에게 일만 시켰을 뿐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회사에서 보내는 직원들, 사실 내 식구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직원들과 매일 지내면서도 그들의 가정에 대해서는 일일이 관심을 갖지 않았으니 서로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나 보다.
장례식 이후에 경리 따마라와 서로 감정을 풀고 다시 일을 하여 벌써 11년째 같이 일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가장 믿을만한 경리 책임자로 있다. 모스크바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을 알고 있는 따마라는 휴가를 갔다 오면 반드시 음식이나 선물을 보내주었고, 어느 날인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몸살이 나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데도 기어이 출근을 하니, 따마라가 약국에가서 약병을 하나 사들고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보고 옷을 벗으란다. 직원들도 다 있는데…
반강제로 윗옷을 모두 벗기더니 타박상과 목 저리고 아픈데엔 특효라고 말하면서 끈적끈적한 기름 같은 약을 발라주셨는데 마치 큰아들을 보살펴 주는 모습이었다. 이젠 언제라도 가면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는 든든한 따마라…
아줌마에게 새로운 사랑이 싹트고 있는 것 같다. 현지 남자 직원과 사귄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내 결혼을 하게 될지는 지켜봐야겠다. 참고로 우리 회사에서 2002년도 한 해에만 사내 결혼이 다섯팀이나 탄생해 인사 문제로 아주 골치가 아팠다. 가능하면 사내 결혼을 좀 안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지만 서로 같이 지내며 시작된 사랑이라는 감정을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다음 호에 계속]
우리는 가족
[지난 호에 이어]
사실 그 말이 맞지만 한국의 회사에서 사장 결재에 이런 주장을 강력히 제기할 만한 경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경리 책임자인 따마라와는 1년간을 잘 지냈다. 성격 자체도 내성 적이고 차분해서 경리에 적격이었다. 그런데 업무적인 관계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대표이사를 외국인으로 하면 너무나 많은 제약 조건이 붙어 다녔고 경찰과 세관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현지인에게 사장 명의를 만들어주는 게 사업하기 편했다.
그런데 회의 때 그 현지인 사장인 엠마와 경리인 따마라가 실제 사장인 나의 의견에 반대 입장을 표현했다. 원리원칙만 따지고 마치 교과서를 보고 일을 하는 것처럼 ‘교본에 이렇게 나와 있으니 이렇게만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따마라가 문제가 아니라 발상의 차이였는데 더 쉽게 말하자면 사외주의 국가체제에서 배운 사고방식과 자본주의적 사고의 차이라고밖엔 볼 수 없었다.
정말 답답했다.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 난 회사문을 닫아버리겠다며 화를 내고 말았다.
“어떻게 사장에게 이렇게 따지고 화를 낼 수가 있어?”
“여기는 러시아다. 러시아에서는 사장이 경리에게 그렇게 화를 내지도 않고 경리의 의견이 안 들어간 것은 무효다.”
이런 감정적인 의견이 왔다갔다하다가 따마라도 일 안 하겠다며 나가버렸다. 나는 집에 가서 보드카를 마시면서 ‘내일 타일러서 일을 시켜야지. 아쉬운 게 나인데 좀 참아보자’하고 생각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날 출근을 해서 따마라를 기다렸으나 그녀는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엠마와 상의하면서 “경리를 다시 뽑아서 일을 시작합시다. 어제 나도 실언을 좀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을 시작하는데 엠마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따마라였다. 어젯밤에 남편이 자살을 해서 출근을 못 한다고 정말 미안하지만 장례식 때까지 기다려주면 그 이후로는 출근하겠다고 했다.
혹시 나 때문에 불편한 마음으로 집에 가서 남편과 싸워 그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엠마와 함께 따마라의 집을 찾아갔다.
집에서 본 따마라는 어제의 그 표독한 눈빛은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어린 양과 같은 눈빛으로 우리를 맞이하면서 어린 두 아들과 인사를 했다. 몇 년 전 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그 이후로 계속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남편이 어제 저녁에 14층 베란다에서 떨어져 자살을 했다고 했다.
나도 지금은 딸 둘이 있는 가장이고 양가 부모님과 친인척이 정말 많다. 가정이 편안해야 바깥일도 잘 된다는 걸 안다. 가족 주변에서 이러저러한 문제가 발생하면 신경이 쓰려서 일에 잘 집중할 수가 없다. 지금은 이런 마음을 알겠는데 그 당시 총각이었던 나는 그걸 잘 이해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직원들에게 일만 시켰을 뿐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회사에서 보내는 직원들, 사실 내 식구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직원들과 매일 지내면서도 그들의 가정에 대해서는 일일이 관심을 갖지 않았으니 서로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나 보다.
장례식 이후에 경리 따마라와 서로 감정을 풀고 다시 일을 하여 벌써 11년째 같이 일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가장 믿을만한 경리 책임자로 있다. 모스크바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을 알고 있는 따마라는 휴가를 갔다 오면 반드시 음식이나 선물을 보내주었고, 어느 날인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몸살이 나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데도 기어이 출근을 하니, 따마라가 약국에가서 약병을 하나 사들고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보고 옷을 벗으란다. 직원들도 다 있는데…
반강제로 윗옷을 모두 벗기더니 타박상과 목 저리고 아픈데엔 특효라고 말하면서 끈적끈적한 기름 같은 약을 발라주셨는데 마치 큰아들을 보살펴 주는 모습이었다. 이젠 언제라도 가면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는 든든한 따마라…
아줌마에게 새로운 사랑이 싹트고 있는 것 같다. 현지 남자 직원과 사귄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내 결혼을 하게 될지는 지켜봐야겠다. 참고로 우리 회사에서 2002년도 한 해에만 사내 결혼이 다섯팀이나 탄생해 인사 문제로 아주 골치가 아팠다. 가능하면 사내 결혼을 좀 안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지만 서로 같이 지내며 시작된 사랑이라는 감정을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다음 호에 계속]
[ⓒ 코리아포워더타임즈 & parcelherald.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보기
MOVEMENTS - 최신 주요기사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