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선풍경, 낮선문화 / 러시아 문화 이해하기
위험한 병원 2
[지난 호에 이어]
대충 혈압계로 혈압을 재고 청진기로 체크하더니 당장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며 업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의식이 없는 친구에게 귀에 대고 말했다.
“병원에 입원해야 된데, 가자!”
겨우 실눈을 뜨고 그때까지 상황을 잘 모르던 친구는 병원에서 온 그들의 모습과 왕진용 철가방을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안 가! 무서워서 싫어.” 했다.
어설픈 통역으로 전했지만 두 의사는 더 악화되면 책임질 수 없으니 꼭 데려가야 한다며 직접 끌고 가려고 했다. 친구는 “안가! 죽기 싫어!”하며 버티고 있었다. 결국 의사들은 나에게 화를 내며 일단 집에 두고 가겠지만 악화되면 다시 전화하라고 하면서 왕진비를 요구했다.
“병원 이용은 무료로 알고 있고 지역 내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도 무료로 알고 있는데 무슨 왕진비냐?”
“그래? 그러면 저 친구 지금 병원으로 강제로 데리고 가서 입원시켜야 되겠군. 면회도 안돼.”
의사라는 사람들이 환자를 두고 흥증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당시 돈으로 10달러 정도를 지불하고 보냈다.
의사들이 간 뒤에 나는 중국 한의사를 찾아갔다. 아직도 의식이 오락가락한 그 친구를 보더니 양 엄지손가락과 인중에 침을 놓아 의식을 회복시킨 후 의식이 제대로 돌아오면 뭐라도 먹이고 우황청심환을 준비하여 먹이라고 했다. 갑자기 우황청심환을 어디서 구할지 난감했다. 가끔 상점에 북한제 우황청심환, 공진단, 경옥고 등을 판매하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고 밤늦은 시각이라 어디가서 알아볼 데도 없었다.
근처 유학생 집을 찾아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약을 부탁했으나 그 집에도 마땅한 약은 없었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그 집 안주인이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찾다가 콩나물 무친 것을 봉투에 싸 주면서 입맛이 없을 테니 이거라도 환자에게 먹이라며 건네주었다.
콩나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잠든 친구를 보면서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 다음날 바로 서울행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다행히 그날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었고 내가 그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빨리 서울로 보내주는 일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다음날 서울로 갔고 곧바로 병원에 입원하여 한 차례 허리 수술을 받고 살아났다. 지금은 광고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나를 생명의 은인쯤으로 생각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모스크바 병원은 외국인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 물론 어떤 분야에서는 아주 앞서가는 분야도 있다. 한때 서울에서는 눈 수술과 관련된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모스크바에서 양쪽 눈 수술을 하면서 휴양소에서 2주 정도 휴식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도 있었다. 이 눈 수술은 서울에서 현재 유행하는 라식수술보다 더 오래되고 기술이 축적된 것인데 망막을 순간 냉동한 상태에서 도려내는 방법으로 수술 시간이 10분밖에 되지 않고 비용은 800달러 정도이다.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당시에는 200달러에 보름간 휴식도 포함되어 많은 한국인들이 모스크바에 와서 눈 수술을 했다.
그러나 이런 좋은 기술이 있는 반면, 융통성이 없고 환자들을 위한 편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가려움증으로 병원에 찾아간 사람이나 ‘그립’이라 불리는 유행성 감기 환자가 병원을 찾아가면 전염을 염려해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 자이레서 격리수용 해버린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유학생이나 교민이 병원에 간다고 미리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병원에 갔다가는 꼼짝 못하고 2,3일 동안 격리 수용되어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람을 찾으나 경찰과 대사관에 실종신고를 하고 난리를 치고 나서야 병원 측에서 태연히 연락이 오곤 한다.
전염성으로 격리 수용된 경우에는 완전히 낫기 전에는 절대로 면회와 퇴원을 허락하지 않고 운이 여간 좋지 않으면 외부와 연락할 기회조차 없으니 병원에 잡혀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 답답할 수밖에 없다.
[다음 호에 계속]
위험한 병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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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혈압계로 혈압을 재고 청진기로 체크하더니 당장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며 업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의식이 없는 친구에게 귀에 대고 말했다.
“병원에 입원해야 된데, 가자!”
겨우 실눈을 뜨고 그때까지 상황을 잘 모르던 친구는 병원에서 온 그들의 모습과 왕진용 철가방을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안 가! 무서워서 싫어.” 했다.
어설픈 통역으로 전했지만 두 의사는 더 악화되면 책임질 수 없으니 꼭 데려가야 한다며 직접 끌고 가려고 했다. 친구는 “안가! 죽기 싫어!”하며 버티고 있었다. 결국 의사들은 나에게 화를 내며 일단 집에 두고 가겠지만 악화되면 다시 전화하라고 하면서 왕진비를 요구했다.
“병원 이용은 무료로 알고 있고 지역 내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도 무료로 알고 있는데 무슨 왕진비냐?”
“그래? 그러면 저 친구 지금 병원으로 강제로 데리고 가서 입원시켜야 되겠군. 면회도 안돼.”
의사라는 사람들이 환자를 두고 흥증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당시 돈으로 10달러 정도를 지불하고 보냈다.
의사들이 간 뒤에 나는 중국 한의사를 찾아갔다. 아직도 의식이 오락가락한 그 친구를 보더니 양 엄지손가락과 인중에 침을 놓아 의식을 회복시킨 후 의식이 제대로 돌아오면 뭐라도 먹이고 우황청심환을 준비하여 먹이라고 했다. 갑자기 우황청심환을 어디서 구할지 난감했다. 가끔 상점에 북한제 우황청심환, 공진단, 경옥고 등을 판매하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고 밤늦은 시각이라 어디가서 알아볼 데도 없었다.
근처 유학생 집을 찾아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약을 부탁했으나 그 집에도 마땅한 약은 없었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그 집 안주인이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찾다가 콩나물 무친 것을 봉투에 싸 주면서 입맛이 없을 테니 이거라도 환자에게 먹이라며 건네주었다.
콩나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잠든 친구를 보면서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 다음날 바로 서울행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다행히 그날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었고 내가 그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빨리 서울로 보내주는 일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다음날 서울로 갔고 곧바로 병원에 입원하여 한 차례 허리 수술을 받고 살아났다. 지금은 광고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나를 생명의 은인쯤으로 생각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모스크바 병원은 외국인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 물론 어떤 분야에서는 아주 앞서가는 분야도 있다. 한때 서울에서는 눈 수술과 관련된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모스크바에서 양쪽 눈 수술을 하면서 휴양소에서 2주 정도 휴식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도 있었다. 이 눈 수술은 서울에서 현재 유행하는 라식수술보다 더 오래되고 기술이 축적된 것인데 망막을 순간 냉동한 상태에서 도려내는 방법으로 수술 시간이 10분밖에 되지 않고 비용은 800달러 정도이다.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당시에는 200달러에 보름간 휴식도 포함되어 많은 한국인들이 모스크바에 와서 눈 수술을 했다.
그러나 이런 좋은 기술이 있는 반면, 융통성이 없고 환자들을 위한 편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가려움증으로 병원에 찾아간 사람이나 ‘그립’이라 불리는 유행성 감기 환자가 병원을 찾아가면 전염을 염려해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 자이레서 격리수용 해버린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유학생이나 교민이 병원에 간다고 미리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병원에 갔다가는 꼼짝 못하고 2,3일 동안 격리 수용되어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람을 찾으나 경찰과 대사관에 실종신고를 하고 난리를 치고 나서야 병원 측에서 태연히 연락이 오곤 한다.
전염성으로 격리 수용된 경우에는 완전히 낫기 전에는 절대로 면회와 퇴원을 허락하지 않고 운이 여간 좋지 않으면 외부와 연락할 기회조차 없으니 병원에 잡혀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 답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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