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선풍경, 낮선문화 / 러시아 문화 이해하기
위험한 병원
[지난 호에 이어]
“선생님 나오세요! 여기 혀를 먹고 학생들을 잘 가르치세요”
“학생 나와라! 여기 귀를 먹고 잘 듣고 배워라”
먹는 부분마다 다 뜻이 있고 먹을 때 마다 보드카 잔이 드높여졌다. 30명 대부분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했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선 저녁 만찬에 한 번씩 일어나서 오늘 만남에 대한 소감을 표현하고 건배를 제의하는 의식 같은 것이 있다. 그날도 30명이 한마디씩 하면서 주인공인 공항장과 나에게 전배 제의를 했다. 나는 그때마다 잔을 다 비워야 했고 그러다보니 그날 보드카를 30잔을 넘게 마셔버렸다. 점심에 말고기를 먹었는지, 아까 양의 눈을 먹었는지 기억도 점점 없어지고 말았다.
중앙아시아 국가에 사는 국민들은 모두 사람 초대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공항장이 마련한 공항 내 호텔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호텔비를 계산하니 하루 숙박료가 3달러라고 한다. 정말 싸다!
그 이후로는저녁 초대를 받으면 어떤 종류의 자리인지, 또 마당에서 만찬을 하는지 먼저 물어보고 나서 갈 것인지를 결정하게 됐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재미있지만 그 순간순간들은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보드카가 없었다면 끝까지 먹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의사의 철가방
러시아에서는 어디에서라도 전화로 03만 누르면 앰뷸런스가 온다. 병원에 소속된 의사들은 대부분 여자이다. 80Kg은 족히 넘어 보이는 뚱뚱한 아줌마들이 요리사 가방을 들고 찾아와서 진찰을 하고 환자를 데려가는데 그 우락부락한 아줌마들의 모습과 철가방을 보면 외국인들은 아무리 아파도 따라나서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 시절부터 무료로 학교 교육과 병원 시설들을 운영해 왔다. 의료보험료는 내겠지만 한국처럼 추가로 돈이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서 약도 본인이 사먹어야 하고 따로 치료비를 내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동양인인 경우에는 아프면 자기만 손해다. 체구가 큰 러시아인들이 사용하는 약과 잘 맞지도 않거니와 아픈 곳을 표현하는 언어상의 문제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으니 쉽게 치료가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94년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화를 그리겠다며 유학 온 학생과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었다. 성격이 원만하고 착했던 그 친구는 허리가 무척 약했고 수술도 안 번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친구가 모스크바의 겨울을 견디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모스크바 겨울은 영하 30도 까지 내려가니 변변한 자가용도 없이 학교와 회사를 걸어서 오가다 보면 아무리 엇을 두껍게 껴입어도 허리 통증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학생은 허리의 통증을 못 이겨 중국 한의사를 소개받아 침을 맞았다. 중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했다는 조선족 청년 한의사레게 어느 정도의 진료비를 지불하면서 매일 허리에 침을 맞던 이 친구는 어느날 집에 돌아오다가 견디지 못하고 실신을 해버렸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 줄 알고 하루를 누워 쉬게 했으나 그 다음날도 다시 집 앞에서 실신을 해서 집으로 끌고 들어왔다. 별다른 액도 없고 해서 나는 전화기를 들고 03을 눌렀다. 30분 정도 지나서 앰뷸런스가 도착하고 두 명의 뚱뚱한 아줌마가 들어왔다. 지저분한 흰색 가운을 입고 철가방을 들고…
대충 혈압계로 혈압을 재고 청진기로 체크하더니 당장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며 업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의식이 없는 친구에게 귀에 대고 말했다.
“병원에 입원해야 된데, 가자!”
겨우 실눈을 뜨고 그때까지 상황을 잘 모르던 친구는 병원에서 온 그들의 모습과 왕진용 철가방을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안 가! 무서워서 싫어.” 했다.
어설픈 통역으로 전했지만 두 의사는 더 악화되면 책임질 수 없으니 꼭 데려가야 한다며 직접 끌고 가려고 했다. 친구는 “안가! 죽기 싫어!”하며 버티고 있었다. 결국 의사들은 나에게 화를 내며 일단 집에 두고 가겠지만 악화되면 다시 전화하라고 하면서 왕진비를 요구했다.
“병원 이용은 무료로 알고 있고 지역 내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도 무료로 알고 있는데 무슨 왕진비냐?”
“그래? 그러면 저 친구 지금 병원으로 강제로 데리고 가서 입원시켜야 되겠군. 면회도 안돼.”
의사라는 사람들이 환자를 두고 흥증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당시 돈으로 10달러 정도를 지불하고 보냈다.
[다음 호에 계속]
위험한 병원
[지난 호에 이어]
“선생님 나오세요! 여기 혀를 먹고 학생들을 잘 가르치세요”
“학생 나와라! 여기 귀를 먹고 잘 듣고 배워라”
먹는 부분마다 다 뜻이 있고 먹을 때 마다 보드카 잔이 드높여졌다. 30명 대부분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했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선 저녁 만찬에 한 번씩 일어나서 오늘 만남에 대한 소감을 표현하고 건배를 제의하는 의식 같은 것이 있다. 그날도 30명이 한마디씩 하면서 주인공인 공항장과 나에게 전배 제의를 했다. 나는 그때마다 잔을 다 비워야 했고 그러다보니 그날 보드카를 30잔을 넘게 마셔버렸다. 점심에 말고기를 먹었는지, 아까 양의 눈을 먹었는지 기억도 점점 없어지고 말았다.
중앙아시아 국가에 사는 국민들은 모두 사람 초대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공항장이 마련한 공항 내 호텔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호텔비를 계산하니 하루 숙박료가 3달러라고 한다. 정말 싸다!
그 이후로는저녁 초대를 받으면 어떤 종류의 자리인지, 또 마당에서 만찬을 하는지 먼저 물어보고 나서 갈 것인지를 결정하게 됐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재미있지만 그 순간순간들은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보드카가 없었다면 끝까지 먹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의사의 철가방
러시아에서는 어디에서라도 전화로 03만 누르면 앰뷸런스가 온다. 병원에 소속된 의사들은 대부분 여자이다. 80Kg은 족히 넘어 보이는 뚱뚱한 아줌마들이 요리사 가방을 들고 찾아와서 진찰을 하고 환자를 데려가는데 그 우락부락한 아줌마들의 모습과 철가방을 보면 외국인들은 아무리 아파도 따라나서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 시절부터 무료로 학교 교육과 병원 시설들을 운영해 왔다. 의료보험료는 내겠지만 한국처럼 추가로 돈이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서 약도 본인이 사먹어야 하고 따로 치료비를 내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동양인인 경우에는 아프면 자기만 손해다. 체구가 큰 러시아인들이 사용하는 약과 잘 맞지도 않거니와 아픈 곳을 표현하는 언어상의 문제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으니 쉽게 치료가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94년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화를 그리겠다며 유학 온 학생과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었다. 성격이 원만하고 착했던 그 친구는 허리가 무척 약했고 수술도 안 번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친구가 모스크바의 겨울을 견디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모스크바 겨울은 영하 30도 까지 내려가니 변변한 자가용도 없이 학교와 회사를 걸어서 오가다 보면 아무리 엇을 두껍게 껴입어도 허리 통증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학생은 허리의 통증을 못 이겨 중국 한의사를 소개받아 침을 맞았다. 중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했다는 조선족 청년 한의사레게 어느 정도의 진료비를 지불하면서 매일 허리에 침을 맞던 이 친구는 어느날 집에 돌아오다가 견디지 못하고 실신을 해버렸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 줄 알고 하루를 누워 쉬게 했으나 그 다음날도 다시 집 앞에서 실신을 해서 집으로 끌고 들어왔다. 별다른 액도 없고 해서 나는 전화기를 들고 03을 눌렀다. 30분 정도 지나서 앰뷸런스가 도착하고 두 명의 뚱뚱한 아줌마가 들어왔다. 지저분한 흰색 가운을 입고 철가방을 들고…
대충 혈압계로 혈압을 재고 청진기로 체크하더니 당장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며 업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의식이 없는 친구에게 귀에 대고 말했다.
“병원에 입원해야 된데, 가자!”
겨우 실눈을 뜨고 그때까지 상황을 잘 모르던 친구는 병원에서 온 그들의 모습과 왕진용 철가방을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안 가! 무서워서 싫어.” 했다.
어설픈 통역으로 전했지만 두 의사는 더 악화되면 책임질 수 없으니 꼭 데려가야 한다며 직접 끌고 가려고 했다. 친구는 “안가! 죽기 싫어!”하며 버티고 있었다. 결국 의사들은 나에게 화를 내며 일단 집에 두고 가겠지만 악화되면 다시 전화하라고 하면서 왕진비를 요구했다.
“병원 이용은 무료로 알고 있고 지역 내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도 무료로 알고 있는데 무슨 왕진비냐?”
“그래? 그러면 저 친구 지금 병원으로 강제로 데리고 가서 입원시켜야 되겠군. 면회도 안돼.”
의사라는 사람들이 환자를 두고 흥증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당시 돈으로 10달러 정도를 지불하고 보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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