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일 보기 힘드네
[지난 호에 이어]
1994년 6월, 빼쩨르부르그에서 한국 냉동식품 박람회사 개최되었다. 박람회에 사용될 화물이 워낙 중요하고 처음으로 큰 화물을 받아서 불안한 마음에 내가 직접 가기로 하고 새벽에 트럭 기사를 만나 출발했다. 한국산 맛살, 오뎅, 참치 등의 화물을 모스크바에서 통관한 후 미리 준비한 드라이아이스를 넣고 빼쩨르부르그로 출발했다.
러시아 도로 사정이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예상 소요시간을 대략 12시간 정도로 생각했고 평소 장이 좋지 않은 나는 ‘정로환’이라는 약도 챙겼다. 러일전쟁 때 러시아에 승리하기 위해서 일본이 만들었다는 그 약을 난 10년간 참 많이도 복용했다. 정로환의 露자가 러시아를 의미한다고 한다.
출발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 도시를 조금 벗어나면서부터 도로가 많이 손상이 되었고 비포장 도로도 나왔다. 모스크바는 겨울철 매일 내리다시피 하는 눈 때문에 염화칼슘을 많이 뿌린다. 이 때문에 도로도 빨리 망가지고, 차량들도 바닥에 코팅처리를 해야 부식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갑자기 차가 기울어 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사도 눈치를 채고 차를 세워서 밖으로 나가보니 오른쪽 타이어 두 개중 한 개가 터져버렸다. 스페어 타이어로 바꾸려고 노력을 하는데 대형트럭이라서 둘이 아무리 애를 써도 타이어가 빠지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 타이어를 교체해 줄 곳도 없었다. 이렇게 큰 트럭의 타이어를 갈아끼워 줄 수 있는 카센터는 국도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기우뚱한 트럭을 다시 타고 나머지 타이어 하나마저 터지지 않도록 평소 속도의 절반정도로 달렸으니 12시간 예상하고 간 일정이 20시간을 넘게 돼버리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울퉁불퉁한 도로를 터진 타이어로 달리는 트럭에 앉아 있자니 속이 불편해 오기 시작했다. 중간에 휴게실이 있어 주유를 하는 동안 화장실에 급하게 갔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모기, 파리 떼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얼굴을 덮쳤다. 이게 화장실인지 분뇨 저장소인지…
사실은 뭐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러시아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화장실 때문에 당황한 적이 많았다. 화장실이 없어서 당황하고, 있어도 당황하고…처음에 공항 화장실을 갔는데 화장실에 문이 없었다. 있던 문을 떼어낸 것이 아니라 애초에 화장실을 만들 때 원래부터 문이나 칸막이 시설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어쨌든 일을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들어오더니 용변을 보며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옆에 난 구멍에 맞춰 앉아 자기 일을 본다. 그 옆자리에서 다른 사람도 집중을 하고 있고…참으로 희한한 화장실 모습이었다.
모기떼를 피해서 결국 화장실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근쳐 풀밭으로 갔다. 풀밭에 앉아도 모기의 극성을 피할 수가 없었다. 바늘로 콕콕 찔러대는 듯한 아픔을 참으면서 풀밭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주유소에 도둑이 든 것이다. 정말 이게 현실인가! 총소리가 몇 번 더 울리고 트럭 기사가 트럭에서 문을 잠금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찌하는 것이 최선일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모기가 물어대고 있는지 어떤지 그때부턴 감각이 무뎌졌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기만 했다.
조금 있다가 보니 도둑들이 어수룩 했는지 어떻게 된 게 이번엔 주유소 주인기 총을 들이대고 도둑들을 겨누는 자세로 역전이 되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와 기사는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후다닥 차를 몰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하려다 만 주유를 다시 하기 위해 다른 주유소를 들어갔다.
열 살 정도 돼보이는 꼬마가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주유를 돕고 있었다.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나는 또다시 풀밭으로 갔다 그곳 화장실 역시 마찬가지여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까와 같이 풀밭에 앉아서 아픈 배를 움켜쥐고 있는데, 이번엔 총소리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펑’
하고 났다.
주유소에 두명의 꼬마가 있었는데, 한 녀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나머지 한 녀석이 자기도 담배를 피운다고 주유 중인데도 불구하고 불을 붙인 것이다.
시설이 좋지 않은 주유소 바닥은 기름으로 젖어 있었고 그 기름에 성냥이 붙으면서 순식간에 아이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아, 정말 일 보기 힘드네…’
다행히 기사가 아이를 빗물이 고여 있는 곳으로 밀었다. 순간적으로 머리와 옷만 태우고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조금 지나니까 친구와 농담을 하고 있다. 그 대범함이란…
아이도 그렇고 차에 불길이 옮겨 붙었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다음 호에 계속]
[지난 호에 이어]
1994년 6월, 빼쩨르부르그에서 한국 냉동식품 박람회사 개최되었다. 박람회에 사용될 화물이 워낙 중요하고 처음으로 큰 화물을 받아서 불안한 마음에 내가 직접 가기로 하고 새벽에 트럭 기사를 만나 출발했다. 한국산 맛살, 오뎅, 참치 등의 화물을 모스크바에서 통관한 후 미리 준비한 드라이아이스를 넣고 빼쩨르부르그로 출발했다.
러시아 도로 사정이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예상 소요시간을 대략 12시간 정도로 생각했고 평소 장이 좋지 않은 나는 ‘정로환’이라는 약도 챙겼다. 러일전쟁 때 러시아에 승리하기 위해서 일본이 만들었다는 그 약을 난 10년간 참 많이도 복용했다. 정로환의 露자가 러시아를 의미한다고 한다.
출발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 도시를 조금 벗어나면서부터 도로가 많이 손상이 되었고 비포장 도로도 나왔다. 모스크바는 겨울철 매일 내리다시피 하는 눈 때문에 염화칼슘을 많이 뿌린다. 이 때문에 도로도 빨리 망가지고, 차량들도 바닥에 코팅처리를 해야 부식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갑자기 차가 기울어 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사도 눈치를 채고 차를 세워서 밖으로 나가보니 오른쪽 타이어 두 개중 한 개가 터져버렸다. 스페어 타이어로 바꾸려고 노력을 하는데 대형트럭이라서 둘이 아무리 애를 써도 타이어가 빠지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 타이어를 교체해 줄 곳도 없었다. 이렇게 큰 트럭의 타이어를 갈아끼워 줄 수 있는 카센터는 국도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기우뚱한 트럭을 다시 타고 나머지 타이어 하나마저 터지지 않도록 평소 속도의 절반정도로 달렸으니 12시간 예상하고 간 일정이 20시간을 넘게 돼버리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울퉁불퉁한 도로를 터진 타이어로 달리는 트럭에 앉아 있자니 속이 불편해 오기 시작했다. 중간에 휴게실이 있어 주유를 하는 동안 화장실에 급하게 갔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모기, 파리 떼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얼굴을 덮쳤다. 이게 화장실인지 분뇨 저장소인지…
사실은 뭐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러시아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화장실 때문에 당황한 적이 많았다. 화장실이 없어서 당황하고, 있어도 당황하고…처음에 공항 화장실을 갔는데 화장실에 문이 없었다. 있던 문을 떼어낸 것이 아니라 애초에 화장실을 만들 때 원래부터 문이나 칸막이 시설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어쨌든 일을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들어오더니 용변을 보며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옆에 난 구멍에 맞춰 앉아 자기 일을 본다. 그 옆자리에서 다른 사람도 집중을 하고 있고…참으로 희한한 화장실 모습이었다.
모기떼를 피해서 결국 화장실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근쳐 풀밭으로 갔다. 풀밭에 앉아도 모기의 극성을 피할 수가 없었다. 바늘로 콕콕 찔러대는 듯한 아픔을 참으면서 풀밭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주유소에 도둑이 든 것이다. 정말 이게 현실인가! 총소리가 몇 번 더 울리고 트럭 기사가 트럭에서 문을 잠금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찌하는 것이 최선일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모기가 물어대고 있는지 어떤지 그때부턴 감각이 무뎌졌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기만 했다.
조금 있다가 보니 도둑들이 어수룩 했는지 어떻게 된 게 이번엔 주유소 주인기 총을 들이대고 도둑들을 겨누는 자세로 역전이 되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와 기사는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후다닥 차를 몰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하려다 만 주유를 다시 하기 위해 다른 주유소를 들어갔다.
열 살 정도 돼보이는 꼬마가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주유를 돕고 있었다.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나는 또다시 풀밭으로 갔다 그곳 화장실 역시 마찬가지여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까와 같이 풀밭에 앉아서 아픈 배를 움켜쥐고 있는데, 이번엔 총소리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펑’
하고 났다.
주유소에 두명의 꼬마가 있었는데, 한 녀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나머지 한 녀석이 자기도 담배를 피운다고 주유 중인데도 불구하고 불을 붙인 것이다.
시설이 좋지 않은 주유소 바닥은 기름으로 젖어 있었고 그 기름에 성냥이 붙으면서 순식간에 아이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아, 정말 일 보기 힘드네…’
다행히 기사가 아이를 빗물이 고여 있는 곳으로 밀었다. 순간적으로 머리와 옷만 태우고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조금 지나니까 친구와 농담을 하고 있다. 그 대범함이란…
아이도 그렇고 차에 불길이 옮겨 붙었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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