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사람들
[지난 호에 이어]
“세관장과 창고장이 골치 아프다고 창고료 3만 달러만 지불하고 오늘 안으로 화물을 중간 도착지였던 헬싱키로 돌려보내래! 익준 나 잘 했지?”
나는 그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고 바이어는 환호성을 질렀다. 화물을 찾게 된 것뿐만 아니라 창고료를 4만 달러나 절감하게 됐으니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고래고래 환호성을 질러댔다.
엠마의 큰 목소리 때문에 않은 자리에서 4만 달러가 날아갔다. 바이어가 원가를 다 알았으니 처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생각이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0달러의 수수료만을 지불하고 그 바이어는 너무 기쁜 나머지 엠마에게 TV를 한 대 선물로 사줬다.
그날 크게 마진을 얻지는 못했지만 서울의 물류업체는 그 이후로 우리 회사에 모든 화물을 맡기게 되었고 그 바이어도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항상 우리를 찾아왔다.
모스크바에 온 지 두 갈이 지났을때였다. 맑고 청명한 9월 달이었는데 러시아 TV에서 무슨 전쟁영화 같은 것이 나오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러시아 말을 몰랐고, TV를 보고 있는 현지 직원들도 그냥 영화를 보는 것처럼 아무 표정이 없어서 나는 그게 정말로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옐친을 반대하면서 부통령 이하 간부급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었다. 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그 중에는 무고한 시민들도 많았다. 쿠테타를 일으킨 반대파는 대중 연설을 통해 시청과 방송국 송전탑을 장악하라고 일반 시민들을 선동했다. 방송국 송전탑은 우리나라의 남산타워보다 훨씬 더 큰 모양을 연상하면 될 듯 하다.
TV는 생방송으로 시청에서의 전트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정부군은 시청에 집결해서 나오지 않는 반대파를 정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밀어붙이고 있었다. 시청 앞엔 볼가강이 있고 그 건너에 우크라이나 호텔이라는 스탈린 양식으로 지어진 50년이 넘은 호텔이 있었다. 정부군은 그 호텔 앞에 탱크를 갖다 대고 시청을 향해 대포를 쏘아댔다. 시청은 정말 견고하게 지어졌는지 포탄을 맞은 자리만 구멍이 파이고, 포타이 들어간 사무실 내부만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요새 가끔하는 컴퓨터 게임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전쟁을 많이 한 나라이다. 지금도 체첸과의 분쟁으로 해마다 여러 폭탄사고 등으로 사망자가 종종 나고 있으며 테러도 종종 발생한다. 평화롭고 조용한 시절을 보낸적이 별로 없어서인지 현지 국민들의 반응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무심하고 냉랭해 보였다.
정부군이 시청 공격을 지시하는 모습, 공격을 하고 있는 그 와중에도 1층 현관 계단에서 고개를 숙이고 음료와 빨을 먹는 군인의 모습, 총격에 의한 사망자와 부상자의 모습 등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방송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나도 군생활을 했지만 총기사고를 직접 본 적이 없었는데, 소총에 의한 부상이 그렇게 끔찍하고 커다란 것인지 당시 방송으로 생생하게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가슴에 소총을 맞은 남자는 가슴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 있고, 다리에 맞은 사람은 다리 절반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이런 장면을 어찌 일반 시민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반대파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보였다. 워낙 정부군이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2002년도 체첸 반군이 극장을 점령하여 배우와 관람자를 인질로 잡고 투쟁을 벌였을 때 정부군은 별 협상도 없이 화학무기로 반군과 인질 모두를 사망시키고 말았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전세계로부터 그런 비인간적인 처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러시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러시라는 미국과 달리 테러범에겐 타협이란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부여진다.
이번에도 역시 시청에서 반군 대부분이 항복을 하고 나왔다. 방송탑을 점령했던 반대파도 항복하고 나왔는데 들리는 말로는 반대파가 방송탑을 장악할 때와 다시 정부군이 방송탑을 탈환할 때 정말 많은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
그 커다란 방송탑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사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숙연해졌다. 나는 그런 상황이 두렵고 긴장돼서 얼굴을 굳힌 채 예의주시하는 데 반해 현지인 직원들은 쿠테타엔 관심도 없는 듯 다른걸 보려고 몇 번씩이나 채널을 돌리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모든 방송이 다 쿠테타 상황을 보여주자 아예 라디오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그러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는지 조금 후 라디오 방송도 모두 중단되고 시내에서 벌어지는 충돌상황만 방송하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조금 하는 고려인 아줌마의 어설픈 통역으로 들은 것인데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라, 위험하다 등 마치 전쟁 같은 느낌을 주었다. 회사에 있는 직원들이 걱정이 되어 더 늦기전에, 어두워지기 전에 퇴근하는 것이 좋겠다며 일찍 퇴근하라고 했더니 모두들 ‘우롸’(만세)를 합창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나가버렸다. 이런…
자기 자신이 아니면 누가 죽어도 크게 놀라거나 우는 경우가 별로 없는 민족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난 호에 이어]
“세관장과 창고장이 골치 아프다고 창고료 3만 달러만 지불하고 오늘 안으로 화물을 중간 도착지였던 헬싱키로 돌려보내래! 익준 나 잘 했지?”
나는 그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고 바이어는 환호성을 질렀다. 화물을 찾게 된 것뿐만 아니라 창고료를 4만 달러나 절감하게 됐으니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고래고래 환호성을 질러댔다.
엠마의 큰 목소리 때문에 않은 자리에서 4만 달러가 날아갔다. 바이어가 원가를 다 알았으니 처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생각이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0달러의 수수료만을 지불하고 그 바이어는 너무 기쁜 나머지 엠마에게 TV를 한 대 선물로 사줬다.
그날 크게 마진을 얻지는 못했지만 서울의 물류업체는 그 이후로 우리 회사에 모든 화물을 맡기게 되었고 그 바이어도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항상 우리를 찾아왔다.
모스크바에 온 지 두 갈이 지났을때였다. 맑고 청명한 9월 달이었는데 러시아 TV에서 무슨 전쟁영화 같은 것이 나오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러시아 말을 몰랐고, TV를 보고 있는 현지 직원들도 그냥 영화를 보는 것처럼 아무 표정이 없어서 나는 그게 정말로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옐친을 반대하면서 부통령 이하 간부급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었다. 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그 중에는 무고한 시민들도 많았다. 쿠테타를 일으킨 반대파는 대중 연설을 통해 시청과 방송국 송전탑을 장악하라고 일반 시민들을 선동했다. 방송국 송전탑은 우리나라의 남산타워보다 훨씬 더 큰 모양을 연상하면 될 듯 하다.
TV는 생방송으로 시청에서의 전트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정부군은 시청에 집결해서 나오지 않는 반대파를 정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밀어붙이고 있었다. 시청 앞엔 볼가강이 있고 그 건너에 우크라이나 호텔이라는 스탈린 양식으로 지어진 50년이 넘은 호텔이 있었다. 정부군은 그 호텔 앞에 탱크를 갖다 대고 시청을 향해 대포를 쏘아댔다. 시청은 정말 견고하게 지어졌는지 포탄을 맞은 자리만 구멍이 파이고, 포타이 들어간 사무실 내부만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요새 가끔하는 컴퓨터 게임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전쟁을 많이 한 나라이다. 지금도 체첸과의 분쟁으로 해마다 여러 폭탄사고 등으로 사망자가 종종 나고 있으며 테러도 종종 발생한다. 평화롭고 조용한 시절을 보낸적이 별로 없어서인지 현지 국민들의 반응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무심하고 냉랭해 보였다.
정부군이 시청 공격을 지시하는 모습, 공격을 하고 있는 그 와중에도 1층 현관 계단에서 고개를 숙이고 음료와 빨을 먹는 군인의 모습, 총격에 의한 사망자와 부상자의 모습 등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방송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나도 군생활을 했지만 총기사고를 직접 본 적이 없었는데, 소총에 의한 부상이 그렇게 끔찍하고 커다란 것인지 당시 방송으로 생생하게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가슴에 소총을 맞은 남자는 가슴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 있고, 다리에 맞은 사람은 다리 절반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이런 장면을 어찌 일반 시민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반대파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보였다. 워낙 정부군이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2002년도 체첸 반군이 극장을 점령하여 배우와 관람자를 인질로 잡고 투쟁을 벌였을 때 정부군은 별 협상도 없이 화학무기로 반군과 인질 모두를 사망시키고 말았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전세계로부터 그런 비인간적인 처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러시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러시라는 미국과 달리 테러범에겐 타협이란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부여진다.
이번에도 역시 시청에서 반군 대부분이 항복을 하고 나왔다. 방송탑을 점령했던 반대파도 항복하고 나왔는데 들리는 말로는 반대파가 방송탑을 장악할 때와 다시 정부군이 방송탑을 탈환할 때 정말 많은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
그 커다란 방송탑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사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숙연해졌다. 나는 그런 상황이 두렵고 긴장돼서 얼굴을 굳힌 채 예의주시하는 데 반해 현지인 직원들은 쿠테타엔 관심도 없는 듯 다른걸 보려고 몇 번씩이나 채널을 돌리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모든 방송이 다 쿠테타 상황을 보여주자 아예 라디오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그러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는지 조금 후 라디오 방송도 모두 중단되고 시내에서 벌어지는 충돌상황만 방송하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조금 하는 고려인 아줌마의 어설픈 통역으로 들은 것인데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라, 위험하다 등 마치 전쟁 같은 느낌을 주었다. 회사에 있는 직원들이 걱정이 되어 더 늦기전에, 어두워지기 전에 퇴근하는 것이 좋겠다며 일찍 퇴근하라고 했더니 모두들 ‘우롸’(만세)를 합창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나가버렸다. 이런…
자기 자신이 아니면 누가 죽어도 크게 놀라거나 우는 경우가 별로 없는 민족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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