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에코비스로지스틱스 김익준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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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08.06.12 09:42   수정 : 2008.06.12 09:42
벼랑에선 바이어

[지난 호에 이어]
“돈이 있으면서 없다고 한 거야? 우리보고 죽으라고? 그리고 당신도 죽는데 왜 돈을 안 준 거야? 우리가 80달러짜리도 안 되는 사람들이냐?”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혼자 어두울 때까지 사무실에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 보드카 한병을 꺼냈다.
술을 몇잔 마시니 좀 안정이 되었다. 내 자신이 불쌍해 보였다. ‘80달러 때문에 내가 목숨을 내밀고 버티고 있었구나…여기 모스크바까지 와서 이렇게 비참하게 살면서 그 돈 아끼려고 직원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구나…’ 하고 생각하니 말 할 수 없이 서글펐다.
너무나 아등바등 살았던,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 같기만 한데 다시 생각하니 불과 9년 전 일이다.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마 후 서울에 있는데 밤늦게 모스크바 주재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이어가 화물이 파손되었다고 친구들까지 끌고 와서 총을 들이대는데 어찌해야 하냐고 …
침착하게 해결방법을 설명해 주었지만 그 상황에서 주재원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을 하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내가 잘 극복해 왔듯 주재원들도 현명하게 장 대처해 나가리라 본다.
95년 겨울 챠터 통관이 시작되기 몇 개월 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그분은 사흘 전에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현지 바이어가 요청한 대로 10톤의 화물을 모스크바 외곽의 컨테이너 세관으로 보냈는데 현지 러시아계 파트너가 주소를 잘못 보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모스크바 공항 세관으로 입고를 시켰다는 것이다.
바이어는 외곽의 컨테이너 세관에 미리 등록을 해놓았기 때문에 모스크바 공항으로 가서 찾을 수도 없고, 이미 중간딜러들이 선금을 내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화물을 당장 내 놓지 않으면 다 같이 죽는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사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데 어디 도움 청할 곳이 없어서 찾아왔다고 하면서 그 바이어에게 같이 가서 해결방법을 의논해 달라고 했다.
사실 나로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화물이 도착된 세관에서 통관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도착된 공항으로 가서 찾지 않으면 그대로 압류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그렇게 각오하고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가서 파악해 보자고 했다.
러시아 바이어는 젊고 키가 컸다. 그는 우리가 있는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우리 앞 테이블에 식칼크기의 예리한 칼을 올려놓았다.
“이 일을 해결 못 하면 둘 중 하나는 죽는다! 해결책이 있냐?”
처음에는 놀랐지만 나는 곧 담담해졌다. 솔직히 내가 죽을 일은 없는 것이다. 서울에서 오신 물류회사 직원인 그분이 죽거나 그 바이어가 죽는다는 얘기이니 나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교적 이성적으로 현재 상황을 판단할 수가 있었다.
서류에는 ‘서울-헬싱키-모스크바 외곽 세관’으로 기입이 되어 있는데 중간에 기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서울-헬싱키-모스크바 공항 세관’으로 전달하고 사라진 것이다.
유럽이나 헬싱키 등에서 온 기사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를 모르는 사람이므로 ‘모스크바’라는 단어만 보고 모스크바 공항으로 간 것이 분명했다.
일이 터진 지 벌써 15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모스크바 공항은 그 당시 한국과 중국에서 오는 화물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어서 창고료가 무척이나 비쌌다. 10톤의 화물이 15일간 창고에 있었으니 창고료만 해도 벌써 7만 달러(원화로는 8천만원)였고 매일 추가 되었다. 현재 상황으로는 창고료를 지불하더라도 그 화물을 빼내 올 수 있는 방법조차 없었다.
바이어는 창고료를 지불할 테니 화물만 찾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나중에는 나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서류를 들고 공항 사무실로 다시 돌아와서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엠마, 그 화물을 못 찾으면 누가 힘들어지지?”
“바이어하고 물류회사 말고 누가 또 있어?”
“공항 세관과 창고도 골치 아프지 않겠어? 엠마가 가서 세관장하고 창고장을 만나서 협박 좀 하고 와.”
이렇게 해서 엠마가 세관장실로 들어가고 약 세 시간이 지났을 때 세관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바이어에게 연락해서 빨리 돈 가지고 오라고 하고 서류를 준비했다. 바이어는 한 시간도 안 되서 007가방을 들고 공항 사무실로 왔다. 바이어가 막 가장에서 7만 달러를 쏟아내고 있는데 엠마가 밖에서 큰 소리로 떠들면서 들어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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