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나와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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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1.10.10 10:08   수정 : 2011.10.10 10:08
이인재 부회장의 ‘나와 6.25’ (3)

6·25 직전 평화로운 추억

흥남 시골에서 무교육으로 6년 살아온 나는 죽음이 막연히 두렵기는 했으나, 아직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고 가족과 가정의 의미, 국가의 개념, 만남과 이별의 개념이 머리 속에 없었다.
피비린내나는 전투 현장에서 떨어져 총소리도 들리지 않는 한적한 고향땅에서, 의식주 걱정도, 공부와 일 걱정도, 나라와 민족의 걱정도 없던 우리는 뜨고 지는 하루 해가 마냥 편하고 즐거울 뿐이었다.
우린 시시때때로 옆동네 중국인의 밭에서 몰래 무우를 훔쳐 빼먹고 형들과 무리지어 돌아다니면서 ‘콩서리’ 를 하고선 시커먼 입을 냇가에서 씻느라 법석을 떨었다. 처마밑의 참새집을 털어 새끼들을 나눠 갖기도 했고, 겨울엔 장기판 밑바닥에 쇠줄을 달아 썰매를 만들어가지곤 성천강에 나가 신나게 썰매를 탔다.
웃마을 큰집에선 자그만 과수원을 했는데, 그 복숭아는 어찌나 알이 크고 맛있던지…. 그러다 과수원을 지키던 내 키만하던 개만보면 혼비백산 도망을 쳤는데, 이 개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금방 쫓아와 나를 쓰러뜨리곤 했다.
유치원도, 유아원도 없던 그 시절, 그 곳에서 여섯살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못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글과 셈 교육은 받지 못했으나, 약간의 생활 훈련은 받았으니… 바로, ‘술 마시기’였다.
별명이 이태백이었던 우리 할아버지는 빈곤속에서도 술은 끊임없이 드셨다. 농토가 넓지도 않고 집에서도 멀지 않은데다가, 10 대의 어린 삼촌이 도와드렸기 때문에 할아버지께서는 술 드시는 낙으로 사셨다.
그런데 그때면 꼭 나를 무릎이나 옆에 앉히고는 술을 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받아 마시곤 했다.
네살 무렵인가? 어느날, 나는 대취하여 마루에서 안방으로 기어들어 간다는 것이 자꾸 마당으로 나가는 통에, 큰아버지가 연신 내 발을 잡아 마루에서 고꾸라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박장대소하던 모습이 지금도 새롭다.
내 이름을 지어주시고, 피난길에 날 업어주셨던 할아버지. 생전에 그 변덕과 잔소리는 싫었으나, 우리가 못잡는 쥐를 용케 잡아 목졸라 죽이고,또는 발로 밟아 터뜨려 죽일때면 참 용하시다고 감탄했었더랬지.
6.25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테니 곧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던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던 할아버지는 지금 부산 동래의 영락공원에 쉬고 계신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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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화물업계의 원로인 동보항공의 이인재 부회장은 함경남도 흥남출신이다. 이 부회장은 본인이 직접 겪은 6.25의 비극을 생생하게 전했는데 본지가 이 부회장의 허락을 얻어 연재하고 있다. 오늘을 사는 젋은 국제물류인들에게 60주년을 맞이한 6.25의 비극을 되새기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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